11장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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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지통 선사가 귀종선사의 문하에 살 때 “나는 크게 깨달았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소리를 듣고 귀종 선사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지통에게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크게 깨달았다고 말하는가?”하고 물었다. 그때 지통 선사가 말했다. “할머니는 원래 여자다.”
    대답이 너무 싱거워서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 어찌 보면 깨달음이란 기상천외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상에 속지 말고 본질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이성적이고 성숙한 안목이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본질은 여자인데 늙었다는 현상에 현혹되면 그 사실을 잊고 본래부터 할머니인 줄 착각한다. 그래서 형상이나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깨달음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금강경에서는‘모양相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깨닫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오죽했으면 성철선사가 산은 산, 물은 물! 이라는 경책을 하였겠는가. 이는 색칠을 하지 말고 사물을 투명하게 보라는 뜻. 성철 선사의 대표적인 법어로 알려진 이 게송은 본래 8세기 중엽의 스승 청원 선사의 말씀이다. ‘ 노승이 30여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그 후에 스승을 만나서 안목이 열려 보았을 때는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분별을 놓고 나니까 그때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더라.’
    이것은 깨달음 이전과 깨달음의 과정과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깊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깨닫기 전과 후에도 여전히 산은 산이며, 물은 물이라는 방식이다. 어쩌면 현상과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관찰자의 입장이 달라진 태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깨달음의 안목이라는 것은 세상을 향해 보다 긍정적이고 따스한 시선이 된다는 의미다. 대부분 사물을 인식할 때 본래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분별이라는 과정을 통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지식과 이해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마주하면서도,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만 보일 것이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풍경으로 보일 것이며, 부동산 업자는 매매의 대상으로 투영될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러나 욕심을 정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여전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내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니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지통선사가‘할머니는 원래 여자다.’라는 대답은 당연한 것에 시비를 하지 말하는 훈수다. 이것은 ‘ 여름은 본래 덥다.’는 것과 같다. 여름이 덥다고 난리치고 짜증부리는 것이 옳다면, 그것은 여름이 추워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여름엔 당연히 덥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다 수행인에 가까운 태도인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을 거부하고 부정하니까 괴로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알아차리라는 가르침이다. (현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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